먼동이 틀 때
백승학
골목에는 늘 버려진 소품들과
잊혀진 전단지들이 갈 곳 없이 뒹굴어도
한 때 삶의 어느 어귀에서는
하나둘 불빛들은 빛이 나고
별빛들 가득하듯
웃음소리 또한 반짝이며 흘렀다던데
불빛도
별빛도
반짝이던 웃음소리 마저 희미해진 골목에서
주머니 속의 기억들만
자꾸 꺼내보던 사람아.
아픔이 깊을수록
견뎌야 하는 이유도 깊은 줄 알았기에
비가 오는 밤이면
젖은 몸 가려주는 어둠이 오히려 고맙다며
비처럼 울던 사람아.
오늘 걸어온 저 먼 길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서설처럼 내려오는 먼동에 마침내
악수를 청하고 싶은 사람아
이밤이 지나가기 전에 말하라
눈부신 것은 도시의 밤이 아니라
멍든 가슴에 돋는 새 살같은
저 먼동이었다고 말하라
먼동을 등에 지고 다가가서
아직도 그대를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눈물에 젖던 가슴 그대로 다가가서
이전보다도 더욱 더 사랑한다고
그대가 먼저 말하라.
(백승학 시집 '사월의 꽃잎'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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