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의 가치
수필가 김 문 근
며칠전 봄비가 왔다. 61mm나 왔으니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이 온 셈이다. 비온 뒤의 파란 하늘 아
래 소백산이 지척인 듯 산뜻하게 보인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도 방바닥에 미세먼지와 꽃가루 없이 깨끗하다. 갓 심은 농작물에 좋고 산불예방에 좋고 꽃가루 씻겨내어 좋으니 기분도 상쾌하다. 새들도 신이 났는지 유난히 짹짹인다. 이렇게 봄비는 고맙기 이를 데 없는 금비다. 얼마나 고마운지 그 가치를 따져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알아 보았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호주 산불은 금년 2월 13일까지 장장 6개월간이나 지속되면서 남한 면적보다도 더 넓은 산림을 불태웠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꼽히는 이 산불로 34명이 목숨을 잃고 5,900채의 건물이 소실되는 등 재산피해가 80조원에 이른다. 12억마리 이상 야생동물들이 죽었다. 코알라는 멸종위기라는 말까지 들린다. 복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자연재해가 없어 축복의 땅이라는 호주이지만 이번 산불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발화였고 역시 자연의 힘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소방대원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비로 인해 산불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호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년 초봄 가뭄철에 우리 지역의 소백산휴게소 건물에서 한밤중 발생된 화재 역시 마침 비가 내려 바로 옆 소백산으로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 만약 비만 내리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처럼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자연 앞에 인간은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 비만 오면 해결될 일인데 인간의 의지대로 안 되니 문제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약한 몸부림이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인간은 기상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봄비가 그렇다. 농작물 작황과 산불예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금년 봄에는 봄비가 자주 내리고 있다. 매주 한두 번씩 내린다. 굳이 선택한다면 한꺼번에 많은 비보다는 이렇게 여러 번 자주 오는 비가 훨씬 좋다. 밭작물을 한창 심을 때인데 이 봄비 덕분에 아직까지는 좋은 작황을 보이고 있다.
봄에 오는 비는 양은 많지 않지만 폭우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땅속으로 스며들어 농작물에 아주 이롭다. 빗물에는 식물의 성장을 돕는 질소 성분이 많아서 같은 물이라도 수돗물이나 냇물보다 훨씬 이롭다.
이처럼 반갑고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봄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2015년 3월 31일 4.5mm의 비가 내리자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이번 비는 2,413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하늘에서 엄청난 현금이 쏟아졌다는 얘기다. 봄비의 경제적 가치를 대기질 개선, 수자원 확보, 산불피해 예방, 가뭄경감의 네 가지 측면에서 금액으로 환산했다고 한다. 산출하기 어려운 농작물 등 식물성장 가치는 제외한 금액이란다. 그래서 봄비는 금비인가 보다.
먼저 경제적 효과가 가장 큰 건 대기질 개선 효과로 1,836억원에 이른다. 봄에는 미세먼지, 황사, 꽃가루 등으로 국민건강이 위협받고 있는데 이 비를 통해서 대기의 질을 씻어주는 효과로 국민 건강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가뭄해소 효과가 69.2억원, 수자원 확보가치 32.7억원, 산불방지 효과 3억원으로 계산됐다.
4.5mm가 1,836억원이면 1mm당 408억원이라는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에 내린 61mm의 봄비는전국적으로 2.5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토면적의 0.78%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단양군을 따져 본다면 194억원(1mm당 3.2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고마운 금비였다.
물론 비오기 전 가물었던 기간에 따라 그 가치, 즉 한계효용은 많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추정금액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간다. 농작물은 물론 산야의 수목 생육까지 망라해 본다면 봄비의 가치는 이 금액의 몇 배가 될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봄비를 맞으며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꽃까지 생각한다면 봄비의 몸값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면 봄비를 바라보는 우리 농업인의 평안한 정서감, 그리고 메마른 도시민의 가슴을 적셔주는 감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비온 뒤의 아침 하늘이상쾌하다. 어제까지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맑아져 먼 산도 깨끗이 잘 보인다. 며칠 뒤 또 다시 비소식이 있다. 풍년을 기약하는 봄비 오는 소리가 마냥 기다려진다.